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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샌프란
[일주일런더너] 런던의 미슐랭 3스타! 고든램지 셰프의 플래그십 프렌치 레스토랑 본문
안녕하세요 오들입니다. 긴설명 없이 바로 시작할게요. 런던에서 기적적으로 레스토랑 고든램지의 예약에 성공해서 다녀온 후기입니다. 겨우 2-3주 전에 온라인으로 예약을 해서 간 정말 희귀한 케이스고요, 점심시간 피크를 넘긴 2시 반쯤에 들어갔어요. 최소 한달 전에는 예약 상황을 보시는게 좋고 호텔이나 신용카드사 컨시어지 서비스를 통해 예약하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두근두근 입구부터 떨리네요. 첼시의 조용한 고급 주택가에 있는 의외로 작은 공간이었어요. 이미 아시겠지만 고든 램지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은 파인다이닝부터 캐주얼한 피시앤칩스까지, 런던은 물론 전세계 주요 도시 곳곳에 정말 많은데요, 이곳의 정식 명칭은 Restaurant Gordon Ramsay 이고 셰프 단독으로는 처음으로 1998년에 오픈한 의미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2001년에 첫 미슐랭 3스타를 받았고 퀴진은 프렌치입니다.
주소: 68-69 Royal Hospital Road, Chelsea, London, SW3 4HP, United Kingdom
카르테 블랑 메뉴는 260파운드 (화이트 트러플 코스 추가시 295파운드)인데요, 메뉴 구성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서버분께 살짝 힌트만 달라고 했는데 안된다고 하셨어요. 이건 말 그대로 레스토랑 고든램지를 믿고 계절에 맞는 최고의 구성을 기대하면서 선택하는, 로또같은 느낌의 메뉴죠. 알레르기나 특정 식재료에 강한 호불호가 없으시다면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메뉴 프레스티지와 카르테 블랑, 두가지 중에서 고민하다가 남편은 메뉴 프레스티지, 저는 카르테 블랑을 해서 서로의 메뉴도 조금씩 같이 맛보기로 했어요. 요즘 달러에 비해 파운드가 저렴한 점을 생각하면 샌프란에서 미슐랭 3스타 가는 것보다는 훨씬 감사한 가격입니다. 업장에 따라서 한 테이블에 같은 메뉴를 주문하게 하는 곳도 있어서 미리 괜찮은지 확인을 하고 주문했어요.
주문을 하자마자 어뮤즈 부쉬가 준비되었고요, 하나하나 다 예쁘고 맛있어서 식사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높아졌답니다.
에스프레소 잔에 담겨 나온 폼 무스 푸아그라입니다. 호로록 마시면 되는데 푸아그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희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푸아그라의 특별한 향과 맛은 유지하면서 느끼한 텍스처를 가벼운 폼 무스로 대체한 아이디어가 돋보였어요. 파인 다이닝에 자주 가는 것은 아니지만 푸아그라를 이렇게 해석한 건 처음 봤네요.
커다란 굴 젤리입니다. 사실 이 코스부터 도쿄의 나리사와가 살짝 연상됐습니다. 자연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음식을 꾸민 모습이 말이죠. 맛도 비슷한 느낌이긴 했는데 저희는 레스토랑 고든램지에 한표를 드립니다. 맛이 조금 더 깊이가 있고 다양한 식감과 향이 어우러져 더 풍성한 느낌이 났어요.
굴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저는 굴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요, 이건 정말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왔답니다. 파인다이닝 치고 양이 굉장히 충분했는데도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이건 제 메뉴가 아니고 남편의 메뉴 프레스티지 코스에 포함된 오리와 계절야채 샐러드에요. 잘 먹더라고요.
역시 남편의 메뉴 프레스티지 코스에 포함된 랍스터와 랑구스틴 라비올리입니다. 랍스터 및 랑구스틴도, 파스타의 식감도 다 정석적인 훌륭한 맛이었어요.
빵도 버터의 풍미와 고소함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이것도 약간 나리사와가 연상되는 맛이라서 신기했는데요, 나리사와처럼 눈앞에서 빵반죽을 구워주진 않지만 전혀 아쉬움 없는 맛이었어요.
다음은 역시 제 코스에 들어있는 생선 요리인데요, 부드러운 흰살생선 사이에 다양한 견과류를 넣어서 고소하고 재미있는 식감을 곁들여서 먹었습니다.
제가 이날 먹은 요리 중에 가장 신났던 코스입니다. 바로 커다란 가리비 요리인데요, 가리비 자체도 굉장히 신선했고 익힘 정도 및 곁들임 소스까지 뭐하나 빠짐없이 완벽한 요리였어요. 이쯤 되니까 굉장히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네요.
다음은 레스토랑 고든램지의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100-day aged cumbrian blue grey라는 메뉴인데요, 이런 특이한 이름의 메뉴는 난생 처음 봐서 검색을 해봤죠. Blue grey라는, 영국에서 기르는 소의 고기를 사용한 메뉴라고 하네요. 프렌치 레스토랑이지만 영국 특유의 식재료를 사용하는 모습이 곳곳에 보이더군요.
이건 제 메뉴에 나온 스테이크입니다. 너무 배불러서 이건 많이 못먹고 남편 줬어요. 제가 스테이크를 많이 좋아하는 편은 아니기도 해서 감히 평을 할 입장도 안되지만 적당히 부드럽고 고기의 풍미도 살아있었어요.
메인요리가 다 끝나고 나온, 와인 좋아하시는 분들을 위한 치즈 수플레입니다. 카르테 블랑에 있었고요, 이날 와인은 주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쉽지만 다 먹지는 못했네요. 치즈를 엄청 좋아하는 분이 아니라면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는 맛이에요. 치즈 크림에 치즈 수플레, 그 위에 치즈를 갈아서 뿌려줍니다.
대망의 디저트 코스입니다. 저는 파인다이닝에서 메인보다 디저트와 애피타이저에서 오히려 만족도가 높은 편인데요, 레스토랑 고든 램지 역시 풍성한 디저트 코스를 준비해 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크렘브륄레의 한 종류에요. 사진만 보면 애매하지만 상당히 맛있었답니다.
이건 메뉴 프레스티지에 포함된 moscato d'asti라는 와인이 살짝 들어간 소르베입니다. 크리미하지만 상큼해요.
이날 제가 두번째 탄성을 지른 코스입니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몽블랑 케이크인데요 (한국에서 좋아하시는 몽블랑 빵과는 다른, 밤 무스 케이크입니다), 일본에서는 동네 베이커리나 심지어 편의점만 가도 몽블랑 케이크가 널려있었는데 미국은 그렇지 않아서 괜찮은 몽블랑 케이크를 먹은지 정말 오래됐거든요. 이건 알라카르트 메뉴에도, 메뉴 프레스티지에도 포함되지 않은, 카르테 블랑에만 나오는 특별한 메뉴라서 정말 큰맘먹고 카르테 블랑에 도전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어보면 이런 모습이고요, 스펀지케이크는 없고 꾸덕한 몽블랑 무스 아래 쇼트브레드 레이어가 있습니다. 진한 밤 소스도 물론 엄지척이에요. 카르테 블랑 메뉴를 주문하면서 혹시 마음에 안드는 요리가 대부분이면 어쩌나, 걱정을 한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앞의 가리비 코스와 이 몽블랑 케이크가 정말 맛있었고 굴 젤리와 식전빵, 그리고 전체적인 코스의 조화와 균형이 이 모든 걱정을 기우로 만들어 주었답니다.
다음은 메뉴 프레스티지에 나온 피칸 프랄린입니다. Pedro ximenez라는 디저트 와인이 가미되었고요, 보이는 그대로 쫀득하고 바삭한 구움과자와 피칸이 어우러져 어른스러운 달콤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와인을 사용한 디저트이지만 알콜맛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 조리과정에서 증발했겠죠.
이제 정식 디저트 코스는 마무리가 되었고요, 티와 페어링할 수 있는 간단한 초콜렛 및 입가심용 젤리가 나옵니다. 이 단계에서 티나 커피를 주문할 수도 있는데 솔직히 너무 배가 부르기도 했고 저희가 마지막 테이블이라서 초콜렛만 먹고 나왔어요.
작은 초콜렛과 젤리까지도 고급스러운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요. 인공적인 귤향이 아닌, 신선한 귤의 즙을 직접 짜서 수제로 만든 젤리여서 그렇겠죠. 사실 초콜렛은 워낙 고급화가 잘 되어 있어서 미슐랭 식당에 오지 않아도 어찌어찌 경험해 볼 수 있는데 이런 고급 수제 젤리는 생각보다 찾기 어려운 것 같아 더더욱 반가웠습니다.
전체적으로 (미슐랭 3스타 치고는) 업장의 규모가 엄청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끝내주는 야경이나 고층 건물의 전망을 기대하실 수도 없고 여기서 실제로 고든램지 셰프님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굳이 컨셉을 짐작해보자면 특별한 날에 차려입고 가는 레스토랑이라기 보다는 영국의 상류층이 편하게 가족모임이나 친구들과 함께와서 편하게 식사하는 분위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건너편에 여기 단골로 보이는 테이블이 있었는데 와인을 끊임없이 주문하면서 엄청 큰소리를 수다를 떨더군요. 심지어 나가는 길에 저희한테 다가오셔서 유쾌하게 스몰토크도 시전하셨어요. 파인다이닝에서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는데 그만큼 캐쥬얼한 분위기라고 보시면 될것 같아요.
드레스코드도 까다롭지 않아요. 스마트 캐주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장 빼입고 오는 분들도 몇몇 있었는데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반바지나 후디, 운동복 차림 정도만 피해주시면 된데요. 서비스는 3스타 답게 완벽했어요. 좁은 공간에서 대여섯 서버분들이 팀을 이루어 그릇을 치워주시고 다음 코스를 서빙해 주셨는데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물흐르듯 잘 진행해 주셔서 더더욱 만족스러운 식사가 된 것 같습니다.
알라카르트 메뉴도 있습니다만 여길 언제 다시와보나 싶어서 코스를 선택했고요, 세금이 20퍼센트, 서비스차지가 15퍼센트 추가되어서 합 550파운드 정도가 나왔네요. 와인은 주문하지 않은 식사입니다. 미슐랭 3스타 및 셀레브리티 셰프 레스토랑 중에서는 양심적인 가격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비싼 곳은 코스당 500파운드를 훌쩍 넘는 곳들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를 생각하면 더더욱 괜찮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화려한 퍼포먼스나 웅장한 건축물은 없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오롯이 요리 하나하나에 오감을 집중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콰이엇 럭셔리를 다이닝으로 표현한다면 레스토랑 고든램지가 아닐까 싶네요. 저는 솔직히 미디어에서 연일 화제가 되는 고든램지 셰프님의 모습만 봐서 유명세 때문에 인기가 많은건 아닐까, 선입견이 조금 있었는데요, 모든 의구심을 한방에 시원하게 날려버린 가치있는 식사였습니다. 그냥 실력이 좋으시고 요리가 다 맛있어요. 예산과 예약이 되신다면 자신있게 추천드릴게요. 레스토랑 내부에서는 딱히 사진을 예쁘게 찍을만한 공간이 없지만 첼시 동네 분위기가 정말 좋습니다. 식사 전후에 천천히 산책하시면 예쁜 사진 많이 나와요. 즐거운 여행 되시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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